2001, 한라산 어리목-영실
2001년 기계학회를 빙자한 제주도 여행의 첫번째 날에는 한라산을 찾았다. 논문 발표도 안했으니 나에게는 말 그대로 여행이었다. 방장을 하고 있어서 실험실 학생들을 인솔?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좀 들기는 했지만. 한라산에 가던 날 나름대로 긴장을 하긴 했다. 비가 좀 오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산이라고 하니 오르기도 힘들 것 같고. 물론 이런 걱정들은 모두 기우였지만. 일단 아침에 호텔을 나섰다. (제주 퍼시픽 호텔에서 묵었는 데 별 4개 호텔이었지만 비교적 저렴하게 묵었다. 아침으로 나오는 한정식이 매우 훌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리목-영실 코스를 택했고 아침에 제주시 시외버스 터미날로 향했다. 일단 산에서 먹을 김밥을 챙기고 싶었는 데 아침에 문을 연 분식점을 찾기가 힘들었다. 문 잠긴 김밥집 두드리고 들어가서 아주머니한테 김밥 만들어 달라고 졸라서 싸가지고 출발했다. 어리목 매표소에서 과감하게 대학생으로 표를 끊고 등산을 시작했다. 비는 그치고 안개가 자욱한 날씨였다. 한라산은 거의 그냥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게 되어 있어서 등반은 어렵지 않았다. 정상은 보존을 위해 휴양림 상태로 들어가서 막아 놓았고 윗새오름까지 오를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백록담에 손을 씻어보거나 하는 경험은 불행히 하지 못했다. 안개가 가득해서 산의 전체적인 그림은 많이 보지 못했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변하는 식물들도 나름대로 재밌었고 윗새오름 휴게실에서 먹었던 컵라면과 우리가 문을 두들겨 얻어낸 콩나물이 들어갔던 걸로 기억하는 김밥의 맛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한라산을 등산할 때는 날이 흐렸는 데 내려와서는 딱 이 사진속의 모습같은 맑은 날씨가 되었다. 너무 날이 좋아 일광욕을 하겠다고 웃옷을 벗었던 실험실 선배가 금방 피부가 타서 괴로와 하실만큼. 백록담에 손을 씻어 보지는 못했지만 한라산에 다녀왔다는 만족감은 있었다. 2001년 당시에 등장했던 조그마한 초코파이인 '줌'과 요즘엔 별로 인기가 없는 '스타우트'맥주가 이 그림을 보니 다시 생각이 난다. 2006년 제주도를 다시 찾았을 때 스타우트 맥주가 너무나 그리워서 제주도 E마트에서 사 먹으려고 했는 데 냉장고에 들어 있는 것이 없어서 포기했다. 뭐 추억은 좋은 것이다. 지금이라도 스타우트 맥주를 한 캔 따면 그때를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을 것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