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2006, 창덕궁 Part 1

reisekorea 2023. 5. 28. 10:42

피천득의 수필중에 '비원'이라는 글이 있다. 창덕궁의 후원을 말하는 데 비원은 96년까지 들어가볼 수 없었다. 내부 복원 공사 때문이었는 지 창덕궁은 입장불가인 상태였으니. 96년 창덕궁이 새로 문을 열었다. 당시에 다른 고궁보다 4배가 비싼 입장료를 받았고(다른 고궁들은 300원, 창덕궁은 1200원: 2006년에는 1000원과 3000원이며 당시에 300원이었던 경복궁은 현재 3000원을 받고 있다.) 2시간 정도의 가이드투어만이 가능했다. 그런 이유로 사생대회 나온 아이들과 결혼식 사진을 찍는 커플들이 주는 혼잡함을 피할 수 있었으니 입장료가 아깝지는 않았다. 창덕궁에는 후원이 보존되어 있고 99칸 양반집, 낙선재 등이 있어 눈덮인 모습을 위에 봤을 때 정말 조선시대의 작은 마을 하나를 보는 것 같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이다. 고궁의 정문들은 가운데 '화'가 들어간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 기둥과 기둥사이를 칸이라고 불러 이 돈화문은 5칸인 문이고 가운데 왕이 다니는 길이 있고 양 옆에 그보다 낮게 길이 설치되어 있다는 설명과 함께 창덕궁의 관광은 보통 시작된다.

 

고궁의 정문을 지나면 개울이 흐르고 금천교라는 다리가 나온다. '금'이라는 글자가 때로는 錦, 때로는 禁으로 쓴다. 비단같은 개울이 흐르는 다리인지 천한것을 금하는 다리인지 모르겠지만 처음 내가 들었을 때는 천한 것을 금하는 다리라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창덕궁의 금천교는 錦을 쓰는 것 같다.  

 

창덕궁 입장권의 배경 사진이었던 -아마 지금도- 인정전의 모습이다. 이 위치에 오면 지붕위에 흰 부분을 용마루라고 부른다는 설명을 듣게 된다. 그리고 흰색의 콘크리트 같은 이음새의 재료가 절대 콘크리트가 아니고 백토와 회분과 뭔가를 섞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용마루에 있는 청동으로된 5개의 꽃모양도 잘못 보면 일본의 상징인 벚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조선의 상징인 오얏(李)꽃을 의미한다는 말도 듣게 되고. 창덕궁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경복궁을 대신하여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까지 조선의 법궁역할을 하기도 했고 인정전은 한일합방 조약이 체결된 장소로 조선왕조의 역사가 끝나는 순간을 바라보기도 했다.  

 

중전마마가 잠을 자는 곳인 대조전의 모습이다. 물론 부부사이에 별 문제가 없다면 주상전하도 여기서 잠을 잔다. 이 지점에서는 왕이 잠을 자는 곳이라 같은 곳이고 용은 왕을 상징하므로 이 건물에 용마루가 없다는 설명을 듣게 된다. 이곳은 고궁 건물 중에 조선의 임금들이 가장 많이 승하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성종, 인조, 효종, 철종, 순종 임금이 이곳에서 돌아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