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다시보기

2006, 안압지(임해전지)의 밤

reisekorea 2023. 6. 5. 07:16

안압지의 야경 사진을 보고 안압지를 한번 밤에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 데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안압지의 원래 이름은 임해전이다. 바다가 없는 경주에 있는 정원의 이름이 임해전이 된 이유는 연못 둘레가 리아스식 해안처럼 생겼고 그래서 연못 주위를 거닐 때 어디에서도 전체 연못을 볼 수 없어 연못이라기 보다는 끝이 없는 바다로 느끼게 설계하면서 이름을 臨海殿이라고 지었다는 것이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기술을 총동원하여 이곳을 만들었고 그래서 조경양식은 백제의 양식, 석축을 쌓은 기초건축은 고구려의 양식을 따랐다고 한다. 일본 동경의 濱離宮은 바다의 느낌을 내기 위해 수문을 만들어 바닷물을 끌어들이고 해송을 심어 정원을 꾸몄는 데 그에 비하면 안압지는 훨씬 독창적인 방법으로 연못으로 바다의 느낌을 만들어 낸 것 같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안압지를 거닐면서 내 앞의 연못이 바다라는 느낌은 그 설명을 듣고서도 별로 못 받았다. 우리나라 문화재 야경조명 중 가장 훌륭하다고 자랑하는 안압지의 조명이 보여주는 연못에 또렷하게 비친 건물의 모습이 환상적이긴 했지만.

 

안압지의 야경을 보고 나서 선다원이라는 전통찻집에 갔다. 9월 27일이라 돗자리에 이슬이 맺혀 조금 눅눅한 느낌으로 방석에 앉았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가 녹차를 주시는 곳이었다.

일본에서도 다도를 하는 곳에는 가 봤지만 그 곳에서 차를 마셔본 적은 없어서 이렇게 차를 마셔본 건 처음이었다. 민나노 니홍고라는 일본어 교재에서 독일 아줌마인 클라라 씨는 차보다 과자를 먼저 먹는 걸 좀 신기해 했고 좀 쓰지만 맛있었다고 하고 있다. 이건 일본어 교재니까 좋은 말만 썼을 것이고 Curious라는 외국 문화 가이드북을 쓴 서양 여성은 일본의 다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외국인이 좋은 반응을 보여주길 기대하는 일본 사람들에겐 미안하지만 '내 취향은 아닙니다.'가 그녀의 평가였는 데 토마토 케첩처럼 걸쭉하게 만들어 쓰디 쓴 차를 무릎꿇고 앉아서 마시는 게 뭐 그리 좋은 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여기서 경험한 차는 일본처럼 커다란 사발을 돌려가며 마시는 게 아니라 사발에는 일단 차를 우려내어 놓고 조그마한 컵에 덜어서 마시는 형태였다. 그리고 조그마한 컵은 오른손으로 들고 왼손으로 바쳐서 먹는다고 한다. 굳이 일본의 다도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차가 내가 평소에 우려먹던 것보다도 연했다. 차와 함께 황남빵의 유사품인 경주 찰 보리빵을 먹어 봤는 데 쫄깃한 맛이 나쁘진 않았지만 황남빵이 나았다. 기계로 찍어내어 비닐에 들어가버린 경주빵과 갓구어낸 황남빵을 비교하는 건 공정한 비교가 아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