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천마총, 미추왕릉
신라의 고분은 벽화가 없다. 고구려의 고분은 무용총, 수렵총, 사신총 처럼 벽화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경우가 많지만 신라의 고분은 그렇지가 않다. 그렇다면 천마총은? 천마총은 천마도에서 따 왔지만 천마도는 벽화가 아니다. 말안장 밑에 붙이는 판에 그려진 그림일 뿐. 중학교 국사 시험문제용 멘트였다.
천마총의 내부는 신라 사람들이 고분을 어떻게 만들었는 지 알아볼 수 있게 되어 있다. 관이 있고 안에서 발굴된 유물의 모조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진품은 경주 박물관에 있고. 유물을 보고 있을 때 일본어 가이드가 일본 사람들에게 '이곳에서 출토된 허리띠가 아주 커서 허리띠의 주인공은 체격이 큰 사람일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래서 역사 기록에 보면 지증왕이 체격이 좋았다는 기록이 있어 이곳을 지증왕의 무덤으로 추정하는 설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신기하다고 느껴 옆에 영어로 가이드 하던 분에게 '진짜 그러냐?'고 물어 봤다. 대답은 '그런 식으로 따지면 왕관도 사람이 머리에 쓰기엔 무지 크다. 결론적으로 여기에 묻혀진 벨트나 왕관은 실제 착용했던 물건이 아니라 부장품으로 따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벨트가 크다는 것만으로 지증왕의 무덤으로 추정하는 건 무리다.'라는 대답을 해 줬다. Who knows?
천마도는 이렇게 생겼다. 나무 위에 그린 그림이고 말 안장 밑에 다는 장식이다. 이 그림도 신라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어 기념품 가게에 손수건 도안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천마를 영어로 가이드하는 분은 뭐라고 번역할까도 조금 궁금했는 데, heavenly horse라고 번역해서 설명했다.
대릉원에는 세개의 중요한 고분이 있다. 천마도가 출토된 천마총, 이곳의 신라 고분군 중 가장 크다고 하는 황남대총 그리고 미추왕릉이다. 향교의 문처럼 태극문양이 그려진 문이 있는 담장으로 둘러쌓여 있고 주변에는 대나무가 있다. 미추왕은 김알지에 이어 신라의 2번째 김씨성을 가진 왕이고 전쟁에서 전사하기 직전의 위기에 몰렸는 데 주변의 대나무가 군사로 변하여 미추왕을 지켜주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미추왕릉 앞에는 한국어, 영어, 일어로 되어 있는 안내판이 있는 데 대나무의 전설은 한국어로만 적혀있다. 외국 사람들이 읽어도 재밌어할 것 같은 데.
대릉원은 릉 자체보다 산책로를 걷는 느낌이 더 좋을 지도 모르겠다. 평지에 숲이 있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없이 빼곡히 들어찬 나라에 살고 있으니. 거기에 경주의 숲은 신비로운 느낌까지 준다. 지금까지 본 신라의 릉들은 서울 사람의 시각으로는 서울의 선릉같은 조선시대의 릉에 비해 좀 볼 품이 없어 보이긴 했다. 하지만 아직 경주의 릉 중에 가장 아름답다는 남산의 괘릉을 보기 전이니 그 비교는 잠시 뒤로 미뤄야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