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선정릉 Part 1
선정릉은 근처에서 자라난 나에게는 아련한 추억의 장소이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는 12년간 소풍, 백일장, 사생대회로 여러번 드나들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6년 꽤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바로 새로 복원한 재실이다. 재실은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이 머물고 제사를 준비하던 건물이라고 하는 데 봉분과 둘레돌, 그 앞에 붉은 칠을 해 놓은 몇몇 전각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신기하다고 느껴졌다.
선정릉은 선릉과 정릉의 합성어다. 그리고 지하철 역 이름은 '선릉'으로만 되어 있다. 선정릉의 정릉(靖陵)은 조선의 11대 왕인 중종의 능이다. 중종은 성종의 둘째 아들이고 자신의 형이었던 연산군이 폐위되자 왕위에 오르게 된다. 형을 쫓아낸만큼 이상정치를 해 보려는 시도를 했을 지는 모르겠지만 신하들이 일으킨 쿠데타를 등에 입고 제위를 하다보니 킹메이커에게 휘둘리게 되고 당파싸움이 본격화되는 흐름에 놓이게 된다. 그렇게 눈치를 보았던 신하들의 평가마저도 그리 좋지는 않아서 보통은 좋은 글자를 붙여주는 시호도 그저 그렇다는 中이 되어버린. 원래는 다른 곳에 묻혔었다고 하지만 명종 대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가 봉은사의 보우라는 승려와 의논하여 이곳으로 이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에 보듯 한국의 릉에는 일본 신사의 도리이 같은 神門이 있다. 아마도 신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문을 뚫어 놓은 것 같다. -일본의 도리이는 새가 앉아서 쉬어가라는 뜻이라고 한다. 일본 사람들은 새를 하늘과 지상을 이어주는 메신저로 믿는 듯 하다. - 그 뒤로는 화강석으로 나란히 만든 神道와 御道가 정자각까지 이어진다. 릉은 그 뒤에 위치한다. 릉 뒤로는 곡장이라는 담장을 두르지만 그 뒤로 나무가 무성히 자라서 릉을 보듬고 있는 것만 같다.
선정릉은 도심속에서 한적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 매력적이다. 정릉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텔리전트 빌딩이라는 포스코 본사를 비롯한 테헤란 밸리의 빌딩 숲이 바깥 너머로 보인다. 별다른 유적이 없는 싱가폴은 개성있게 생긴 빌딩 들이 관광자원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역시 별다른 관광자원이 없는 강남구는 테헤란 밸리의 빌딩 들에서 그런 기대를 했었다. 그래서 거리에 태극기를 꽂아 장식하고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겠다고 했는 데. 아직까지는 선정릉 바깥의 세상보다는 선정릉 안의 세상이 더 아름다운 것 같다. 선정릉 바깥 세상마저도 치열한 삶의 현장이 아닌 선정릉 안에서 강건너 불 보듯 볼 때 멋지게만 다가오는 것 같고.
선정릉은 성종의 릉인 선릉과 중종의 릉인 정릉이 합쳐져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실제로 선정릉에 와보면 릉이 하나 더 있다. 위 사진은 성종의 제2계비였던 정현왕후의 릉이다. 원래는 후궁이었으나 연산군의 어머니였던 폐비 윤씨가 폐위되고 숙의에서 중전의 자리에 올라갔다. 왕릉은 봉분의 아래쪽에 병풍석을 두르지만 왕후의 릉에는 병풍석을 두르지 않아 구별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중종의 릉인 정릉은 가까이서 볼 수 없는 구조이지만 정현왕후릉과 선릉은 가까이서 볼 수가 있다. 릉의 뒤에는 곡장이라는 돌담이 둘러져 있고 능의 옆은 돌로 조각한 양과 호랑이가 릉을 지키고 있다.
정현왕후는 살아있을 때는 후궁에서 중전이 되는 기쁨?을 누렸을 지 모르겠지만 죽어서는 꽤 고생을 한 모양이다. 이 릉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능침을 훼손하고 시신이 있는 부분까지 불을 질렀다고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