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봄, 경복궁 3
경복궁에서 경회루와 함께 물위에 떠있는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는 향원정이다. 흰색 철제로 만든 향원정 다리가 너무 이상했는데 고종 때 설치한 모습도 이러했다고 한다. 경복궁의 북쪽 영역은 고종의 공간이라고 한다. 고종은 신문물에도 관심이 높아서 일본, 중국보다 먼저 전기를 들여왔고 이곳에 백열전등을 설치했다고 한다. 연못의 물을 발전기 냉각수로 사용하였고 에디슨도 동양의 미지의 나라에서 국왕이 요청하여 전기 공사를 해 주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 전구를 설치했을 때 열이 많이 발생해서 연못의 잉어가 모두 죽어서 떠올랐고 당시 사람들은 불길한 징조라며 신문물을 경계했다고 하는데...
이 기단은 세자가 기거하던 동궁에 있던 자선당의 기단이라고 한다. 일제시대 때 오쿠라 호텔에서 뜯어가 도쿄의 호텔에서 쓰고 있다가 관동대지진으로 불에 타고 기단만 남아 방치되어 있던 것을 가져왔다고 한다. 복원에 활용하기에는 상태가 좋지 않아 이대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경복궁의 북쪽이 고종의 공간으로 불리우는 이유는 건청궁 때문일 것 같다. 창덕궁의 낙선재처럼 단청을 하지 않은 건물이고 고종이 실거주? 목적으로 지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아관파천 이후에 경복궁을 버리면서 실제로 별로 활용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조선 왕실의 재정은 국가 재정과 왕가의 재산이 분리되어 있는데 건청궁은 왕가의 재산으로 건축했다고 하고 어떤 분들은 흥선대원군이 주도하여 중건한 경복궁이 아닌 고종의 경복궁을 갖고 싶어했다고 해석하기도 하는 것 같다.
경복궁의 북쪽 끝에는 3개의 서로 다르게 생긴 건물이 연결된 건물이 있는데 왼쪽 끝에는 팔각형 정자인 팔우정이 있다.
중간에는 중국 풍의 건물인 집옥제가 있는데 양쪽의 벽돌 구조 뿐 아니라 창살의 무늬 특히 현판을 세로로 써 놓은 것이 중국의 양식을 따왔다는 느낌을 준다. 외국 사신을 접견하기도 하고 평소에 도서관으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서양의 근대 기술에 관한 서적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사실 등을 들어 고종이 나약하고 무능했다는 이미지는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강제 퇴위시킨 조선의 왕을 비하한 일본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기도 한다.
집옥제의 오른쪽에는 협길당이라는 건물이 붙어 있는데 이는 한국 양식으로 되어 있다. 해설사 선생님은 경복궁은 고종의 못다이룬 꿈이 담겨져 있는 곳이라는 말로 설명을 마무리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