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가을, 창덕궁 낙선재
경복궁의 건청궁이나 덕수궁의 석어당처럼 낙선재도 단청을 하지 않은 건물이다.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가 같은 스타일로 붙어 있는데 낙선재가 가장 유명한 건물이어서 이 지역을 낙선재 권역으로 부른다고 한다. 낙선재에는 1989년까지 덕혜옹주와 이방자 여사가 실제로 거주했고 창덕궁은 그 이후에 개보수를 거쳐 일반에 공개가 되어 신비로운 공간의 이미지가 있었다. 낙선재로 들어가는 문이 장락문인데 흥선대원군의 글씨라고 하고 김정희의 팬이었던 흥선대원군이 김정희의 글씨체에 영향을 받아서 썼다고 한다. 장락은 중국의 신화에 나오는 여자 신선이 사는 달의 궁전의 다른 이름이고 왕의 휴식 공간인 낙선재를 신선의 세계로 생각하여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낙선재를 주로 조성한 왕은 헌종이라고 한다. 영화 명당에서 조정 밖의 사석에서 세도정치가에게 협박당하는 어린 왕이 헌종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헌종은 13살에 즉위한 단종보다 어린 8살에 즉위하였고 수렴청정을 거쳐 실권을 조금은 가지게 되었으나 세도정치가 극에 달한 시기여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단순한 국정의 스트레스가 아닌 숙청당할 수도 있다는 생명의 위협을 늘 느꼈던 것 같고 자신을 위한 해방의 공간으로 낙선재를 조성했다고 한다. 영조, 정조를 존경하여 검소함을 추구하여 단청을 하지 않았지만 세세한 디테일에 공을 들여 힐링의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신선이 사는 달의 궁전이 테마라 정자에 넓은 지붕을 올리고 문 아래에 구름 모양의 장식을 하고 안에는 보름달을 연상시키는 원형 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서쪽의 윙은 헌종의 덕질 공간으로 본인이 좋아하는 추사의 글과 그림으로 가득 채웠다고 한다.
낙선재 건물은 디테일이 훌륭한데 창틀과 기와의 문양도 매우 다양하고 구석 구석 아름다움을 숨겨 놓았다고 한다. 낙선재는 순정효황후, 이방자 여사, 덕혜 옹주가 살았던 공간인데 순정효황후는 이 공간에서 태평양전쟁, 해방, 남북분단,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굴곡을 겪었다고 한다. 이방자 여사와 덕혜 옹주는 조선 왕조의 부활을 경계했던 이승만 대통령 때는 입국을 못하고 박정히 대통령 때 들어와 이곳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슬픈 영화같은 삶을 살았던 내지는 실제로 영화로 제작된 덕혜옹주가 말년에 남긴 비뚤비뚤한 한글 글씨, 이방자 여사의 칠보 공예나 그림 등이 이 공간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하면 느낌이 조금 신기하다.
낙선재 옆에 있는 석복헌과 수강재는 경빈 김씨와 순원왕후의 장소라고 한다. 석복헌은 헌종의 사랑이 담겨 있다고 한다. 후사가 없이 첫 중전과 사별한 헌종은 계비를 간택하게 되는데 원래는 순조의 부인인 순원왕후와 효명세자의 부인인 조대비만 보게 되어있는 최종면접에 참관하여 경빈 김씨에게 반하게 되었다고 한다. 최종 결과는 헌종의 의사와 관계없이 홍씨가 간택되었고 혼례를 올리지만 몇년간 후사가 없자 마음에 두었던 김씨를 경빈으로 맞았다고 한다. 헌종은 후사가 없었고 결국 왕위는 강화도령 철종에게 넘어갔지만 경빈 김씨는 빼어난 처세술로 고종 떄까지 이곳에서 잘 살았다고 한다. 석복헌 뒤에는 예쁜 꽃담이 조성되어 있다.
낙선재를 설명하던 문화해설사 분이 가장 중요한 정보라며 언덕 위쪽에 창덕궁의 유일한 화장실이 있다고 알려 주셨다. 언덕에 오르니 낙선재 위쪽에 건축된 팔각정과 낙선재가 함께 눈에 들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