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2006, 덕수궁 Part 2

reisekorea 2023. 5. 27. 17:19

회랑으로 이어진 쌍동이 건물 즉조당과 준명당이다. 덕수궁은 원래 궁궐이 아니었다.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었는 데 임진왜란때 왕궁이 모두 불타고 남아 있는 건물 중에서 가장 쓸만한 건물이었던 건물을 임시로 왕궁으로 쓰면서 역사에 등장했다. 그리고 사진의 오른쪽 건물인 즉조당에서 2명의 임금이 즉위를 한다. 광해군과 인조. 왼쪽의 준명당은 가운데 명이라는 글자가 日변이 아닌 目변의 밝을명자로 되어 있다. 눈을 뜨고 밝게 보라는 의미라고 하는 데. 일본인 교사를 고용하여 덕혜옹주가 유치원 교육을 받았던 곳이라고 한다. 60대에 덕혜옹주를 볼 정도로 정정했던 고종황제는 덕수궁에서 승하하는 데 건강하셨다 보니 일본에 의한 독살설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덕수궁에 있는 이 세종대왕 동상은 광고를 비롯한 여러 매체를 통해 세종대왕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등장해왔다. 그러나 덕수궁은 임진왜란때 임시로 왕궁으로 쓰면서 등장한 건물이니 시대가 맞지 않는 동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만원권보다 비싼 고액권을 발행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세종대왕보다 더 높은 지폐의 등장인물을 찾을 수가 없어서라는 설도 있을 정도이니. (2006년 당시에는 이랬던 것 같다. 2023년 현재 세종대왕상은 세종로에 들어섰고 신사임당이 주인공인 5만원 권이 등장했다.)

 

덕수궁에도 창덕궁의 낙선재처럼 단청을 하지 않은 건물이 있다. 단청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물론 궁궐이 아닌 민가이기 때문이다. 이 건물의 이름은 昔御堂이다. 옛날 임금의 집이라는 뜻인 데 바로 임진왜란 후에 서울로 돌아온 선조 임금이 기거했던 곳이 이곳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원래는 월산대군의 집이었고.

 

덕수궁은 고종황제가 기거하였다. 고종황제는 자기 자신이 과감하게 단발을 하기도 했고 서양문물에 관심이 많았던 인물인 듯 하다. 함녕전같은 침실에 전기등을 설치하고 러시아 건축가에 의해 사진에 보이는 정관헌을 짓기도 했다. 靜觀軒이라는 이름처럼 고종 자신이 커피를 마시는 공간으로도 많이 활용했다고 한다. 서양의 느낌이 나는 건물이긴 하지만 난간의 투조는 제법 동양적인 소재를 갖고 있다. 문양의 네 귀퉁이에 박쥐 문양이 있는 데 의외로 박쥐가 한국에서 복의 상징이었고 때로는 다산의 상징이어서 여인들의 노리개의 디자인에도 많이 쓰였다고 한다.

 

덕수궁을 가이드해준 궁궐지킴이 분은 석조전은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다는 걸 제외하면 별 의미가 없는 건물이라고 하셨지만 이 건물은 국사 교과서에도 잠깐 비친다. 고딕양식의 명동성당과 르네상스양식의 덕수궁 석조전. 원래는 영국인이 만들기 시작했지만 일본으로 관리가 넘어가서 일본인이 완성한 건물이다. 원래는 궁중에서 쓰던 물건들 - 내 기억이 맞다면 옷들이나 각종 장신구, 가구 등-을 전시하고 있었는 데 2006년 봄에는 내부공사 중이었다. 가이드북에는 덕수궁은 진달래가 피는 봄에 가장 예쁘다고 했지만 석조전만큼은 분수가 있어서 그런지 여름이 더 멋진 것 같다.그래서 내가 찍은 사진을 버리고 누군가가 여름에 찍은 사진을 가져왔다.

 

덕수궁 안에는 세종대왕상과 함께 만원지폐에 등장하는 물시계 자격루가 있다. 국보인 것을 감안하면 너무 허술하게 관리되는 듯도 했는 데. 광명문이라는 문 안에 이 부근에 있던 절에 있던 종과 화살을 쏘는 화차와 함께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