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운현궁을 찾았다. 옛날에는 입장료가 있었던 것 같은데 2024년 현재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얼핏 보면 그냥 양반집 같지만 권력을 잡았던 흥선대원군의 집이라 집권 당시에 멋지게 꾸민 모습이 일부 남아 있다. 대원군은 방계에서 왕이 나왔을 때 그 아버지를 의미하는데 조선 시대에 4명이 있었고 왕이 즉위할 때 살아 있던 사람은 흥선대원군이 유일했다는 것 같다. 게다가 그가 고종을 탄생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니 권력을 누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자식을 잘 둔 덕에 나이들어 권세를 누리게 되었다는 의미를 담아 건물에는 老를 붙여놓았다고 하는데 사랑채에는 노안당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김정희의 글씨를 모아 만든 것이라고 한다. 사랑채는 손님을 맞는 곳이고 권력을 과시하기도 했지만 비밀스러운 이야기도 오고가서 비밀 공간도 안에 마련되어 있다.
노안당 뒤에 주요 건물인 노락당이 있다. 이곳에서 고종황제와 명성황후의 결혼식이 진행되었다고 하는데 왕이 되기 전에 결혼을 했던 것 같다. 건물 뒤로 서양식 건물이 보이는데 양관이라는 건물이고 현재 덕성여대 소유로 되어 있어 일반 관람은 불가능한 것 같다. 멋진 건물인데 일본의 유명 건축가가 설계했다고 한다. 일본이 선물을 해 준 형삭이었지만 사실은 일본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흥선대원군을 감시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도 하는데...
운현궁의 안채는 이로당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2명의 노인이 행복하게 살라는 의미였다고 하는데 너무 많은 권력을 가졌고 너무 많은 일들을 해서 흥선대원군의 만년이 그렇게 편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임오군란이 있었고 청나라에 압송되기도 했고. 다른 건물과 다르게 ㅁ자모양의 폐쇄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운현궁의 건물은 모두 남향이라 햇빛을 가리기 위한 차양이 있다고 하는데 남향이 아닌 부분에도 차양은 설치가 되어 있다. 일반 양반집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닥에 돌기단이 있는 부분이라고 하는데...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책은 기본적으로 세도정치를 혁파하는 것이었는데 성과는 물론 있었고 민중의 지지도 일부 받았지만 완벽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경복궁을 다시 세우는 과정에서 발행했던 당백전이 전시되어 있는데 100배의 가치를 갖는 통화라니 경복궁의 재건이 탐나기는 했겠지만 현재의 경제 상식으로는 너무한 정책을 펼친 것 같다. 게다가 실제 전시된 당백전을 보면 별로 100배의 가치가 나가게 보이지도 않았다.
운현궁 맞은 편에는 천도고 중앙대교당이 있다. 동학농민운동 이후 동학은 종교인 천도교로 발전했고 그 중심이 되는 곳이 이곳이었던 것 같다. 서양식 성당과 비슷한 느낌인데 독일 분리파 양식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클림트나 쉴레 같은 분리파 화가는 익숙한데 분리파 건축은 조금 생소한 것 같다. 바우하우스는 장식성보다는 실용성을 추구한 것 같은데...
건물의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안에 기둥이 없어서 공간감이 느껴졌다.
천도교 중앙대교당 옆에는 민병옥의 가옥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식 화장실이 들어선 집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원래 개방을 안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이곳을 지날 때는 문이 닫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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