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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야기

2006, 창덕궁 Part 2

임금의 차고인 어차고의 모습이다. 이곳에는 가마도 있지만 진짜 차도 있다. 원래는 손님을 접대하던 공간이었지만 차가 생기고 나서는 차고가 되었다고 한다. 고종황제가 탔다던 캐딜락, 명성황후였는 지 순종이었는 지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누군가가 탔다는 롤스로이스가 보관되어 있다.

 

창덕궁이 1996년까지 개방을 안한 이유는 어쩌면 왕족들이 기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인 지 모른다. 창덕궁에 단청을 하지 않은 건물군이 있는 데 99칸의 양반집과 그리고 이 낙선재다. 이곳에 왔을 때 가이드 분이 '낙선재, 보고 싶으셨던 분 많으시죠?'라고 했는 데 상대적으로 소박해 보이는 이 건물을 사람들이 왜 보고 싶어할까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리고 이 건물의 사연을 듣고 나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낙선재는 원래 상을 당한 왕후가 지내는 곳이었고 1963년부터 영친왕, 이방자여사, 덕혜옹주가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세분 모두 이곳에서 숨을 거두셨다고 한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이방자 여사가 결혼할 때 너무 의상이 무거웠다. 아이가 죽고 너무 슬펐다는 인터뷰를 하신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한국의 정원 하면 이런 그림을 가지고 있었다. 네모난 연못이 있고 그 안에 둥근 섬이 있고 그리고 아름다운 정자가 물에 비친. 경복궁의 향원정과 창덕궁의 부용정의 이미지. 그래서 일본의 아따미에서 보았던 한국 정원에 실망을 했는 지도 모르겠다. 뭐라고 한글로 써 놓은 것도 예산이 모자라 정원을 허술하게 만든 것에 대한 변명처럼 들릴 뿐이었고. 김대중 대통령의 방문을 기념해 급조해서 그런지. 하여간 창덕궁의 대표적인 그림 중 하나인 부용정은 향원정과 달리 각이진 형태의 전각이 특징적이다. 연못으로 이어진 두 기둥이 꼭 사람이 물에 두 다리를 담그고 있는 것 같다고 하는 데 진짜 그런 것 같다.

 

조선시대의 여성은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다. 왕비의 경우 더더욱 심해서 궁궐밖으로 나가기 힘들었다. 하긴 요즘도 국왕이 있는 나라의 왕비들은 바깥 나들이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일본 세자비는 우울증에.. 하여간 그런 왕비를 위해 자연을 느낄 공간이 제공되었고 그 공간이 바로 고궁의 후원이었다. 고궁마다 후원이 있었던 듯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건 창덕궁의 비원이 유일하다. 비원이라는 말은 일본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라 쓰지 말자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외국어로 씌어진 가이드 북에서 이 이름이 꽤 매력적으로 보이는 건 사실이다. 안에 들어가 보면 바로 바깥에 빌딩 숲이 있다는 걸 잊게 할만한 수풀 그리고 그보다 정말 수령이 오래된 나무가 주는 신비한 느낌이 꽤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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