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학회가 ICC제주에서 열렸다. 학회에서 제공한 숙소는 10만원을 가볍게 넘어가는 펜션뿐. 팀에서 혼자 논문을 발표하러 가는 나로서는 무리였다. 학교 후배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려 했으나 후배들은 발표하는 날 와서 그날 간단다. 옆 연구소에 있는 친구도 마찬가지고. 결국 저렴한 숙소를 찾을 수 있는 서귀포시내에서 숙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 발상을 할 때만 해도 중문쪽에 있는 ICC와 서귀포의 거리를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막연히 행정구역상 서귀포시니 별로 안 멀겠지라고 생각했을 뿐. 결론적으로 서귀포시는 매우 길쭉하게 생겨먹은 도시였고 서귀포 시내와 학회장은 꽤 멀었다. 택시로 15분에서 20분 쯤 걸리고 요금은 8천원쯤 나오는 거리. 어찌되었든 서귀포 시내에서 적당한 여관을 찾았다. Lonely planet에 첫번째로 나온 곳은 공사중이었다. 두번째로 추천된 곳이 이곳인 데 나름대로 괜찮았다. 99년도엔가 나온 그 책에는 1박에 2만5천원으로 되어 있지만 7년이 지난 지금은 3만원으로 올라 있었고. 3박을 할 예정이어서 아주머니랑 네고해서 만원 깎아 8만원에 3박을 묵었다. 방은 깨끗하고 시설도 괜찮고 매일 수건도 잘 갈아 주셔서 좋았는 데 방 안에 가구 중에 서랍이 열려서 뭔가를 집어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없었고 - 분실물 방지를 위해 좋을 지도 모르지만- 헤어 드라이어가 동전을 넣어야 쓸 수 있는 것인 게 좀 그랬다. 화장실 조명이 너무 어두운 것 같기도 했고. 뭐 그래도 이만하면 만족한다. 2001년 2004년 2006년 순으로 숙소의 수준이 떨어지고 있는 걸 보면 내가 커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회의가 좀 들긴 했지만.
내가 묵었던 여관 옆 골목으로는 바다쪽으로 내려갈 수 있다. 거리의 이름은 이중섭 거리였다. 이중섭씨가 서귀포 출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골목에는 그의 그림들이 간판에 장식되어 있다. 이중섭의 팬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갑판처럼 만들어진 보도를 내려갈 때 삐죽이 머리를 내미는 바다가 더 감동적이었다.
2006년 6월 제주공항에 도착해서 공항버스를 타고 ICC를 지나 서귀포시의 뉴경남호텔 앞에 내렸다. 정방폭포를 보면서 지나치기는 했지만 서귀포 시내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내린 순간 당장 잠자리를 어떻게 해결하나 하는 불안감 내지는 스릴이 느껴지긴 했지만 서울에도 있을 지 모르는 자줏빛 페츄니아가 꽤 남국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제법 따뜻한 동네에 왔음을 느낄만큼.
2006년 서귀포에서의 첫일정은 ICC에서의 맥주파티였다. 20분쯤 늦게 갔는 데 아무것도 없이 맥주만 있었다. 물론 더 적응이 안되는 건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참가자가 양복 차림의 교수님 들이셨다는 것이지만. 게다가 맥주는 조그마한 잔도 아닌 묵직한 500cc잔. 묵직한 맥주잔을 무겁게 들고 다니는 파티가 좀 적응이 안되긴 했다. 그것도 날이 환하게 남았음에도 금방 끝났다. 서귀포로 돌아 왔고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바닷가로 갔다. 알고보니 서귀포도 항구였다. 유행가 제목처럼 제주도의 푸른 밤을 느낄 수 있는.
제주도에는 시가 2개 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 서귀포시와 제주시는 시외버스로 이어져 있는 데 제주시로 갈 때에는 공항버스를 타거나 경남호텔에서 멀지 않은 버스터미날을 이용해서 이곳을 이용하지는 않았다. 서귀포시는 매우 길쭉하게 생겼는 데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동쪽끝에 꽤 번화한 시가지가 있고 가운데에 시청과 월드컵 경기장 그리고 서쪽으로 중문관광단지까지가 행정구역상 서귀포시에 해당한다. 이 버스터미날은 그중 시청과 월드컵 경기장이 있는 곳 부근에 있는 데 유령이 나올 것 같이 한가한 분위기였다.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 앞에 펼쳐진 언덕길이다. 월드컵 경기장에서 바라봤을 때는 뒤에 산이 보이고 남국적인 느낌의 싱싱한 가로수가 늘어선 모습이 꽤 멋져 보였는 데 실제로 길을 건너서 사진을 찍으려니 그 맛이 안나왔다. 그렇다고 도로 한 가운데서 사진을 찍을 수도 없고. 육지로 돌아온 지금에야 그때의 느낌을 마음으로 느낄 수 밖에. 그래도 그날의 따뜻한 햇살은 사진에서도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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