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다시 한라산을 찾았다. 2001년에는 어리목-영실코스를 밟아봤고 2006년에는 성판악-관음사 코스를 택했다. 성판악-관음사 코스는 경사는 작지만 긴 코스로 알려져 있었다. 25km길이에 9시간이 걸린다고 하여 꽤 긴장을 하게 했고 아침일찍 성판악을 출발했다. 한라산의 등반코스가 늘 그러하듯 계단이 잘 되어 있었고 길 양 옆으로 거의 수풀을 이루고 있는 난초가 제법 이국적인 느낌을 주었다.
용암이 한번에 나와 확 퍼져서 방패모양으로 굳은 한라산이지만 진달래밭 대피소를 지나 백록담으로 가는 길은 그래도 경사가 좀 있다. 백록담에 다다르면 나무 계단으로 잘 포장된 길이 나오지만 진달래밭 대피소 바로 위에는 발을 피곤하게 하는 현무암길이 우리를 맞는다. 그와 함께 뽀얀 안개비와 함께 나무에 핀 눈꽃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아직 아랫동네에는 가을빛이 남아있는 11월이었지만 해발 1700미터 정도를 넘어서면서 계절은 겨울로 바뀌었다. 그것도 꽤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겨울로.
한라산에는 2번째지만 백록담은 처음이었다. 분화구 속에 물이 고인 백록담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안개 자욱한 정상에서 바람결대로 얼음이 얼어버린 울타리 뒤의 짙은 안개 속 어딘가 그 놈이 숨어있다는 걸 얼음에 덮여 내용을 알아볼 수 없는 '백록담'이라는 이정표를 바라보며 믿을 수 밖에 없었으니. 그래도 이런 장면마저도 내겐 처음이니 '멋지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백록담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겠다는 '맹랑한' 계획은 실행에 옮기지 못했지만.
백록담에서 용진각 대피소로 가는 길은 진달래 밭 대피소 쪽 보다 경사가 심해서 성판악-관음사 코스를 택한 것이 주차비를 아낄 뿐 아니라 체력도 아껴준다는 걸 느끼게 했다. - 성판악 주차장은 주차비를 받지 않지만 관음사의 주차장은 주차비를 받는다. 이 길을 내려가는 우리는 하얗게 내린 눈꽃이 마냥 신기하고 아름다웠지만 이 길을 올라오는 등반객은 '백록담은 언제 나오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감싸고 있는 듯 했으니.
용진각 대피소에서 내려와 관음사로 가는 길의 계절은 다시 늦가을의 빛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무들의 키도 다시 훌쩍 커져 있었고. 이곳의 용암 동굴 들에는 제주도가 역사의 격랑에 휩쌓였을 때마다 많은 사람이 희생이 된 곳이라고 한다. 이 길을 걸을 때 내 뇌리에는 그런 역사의 상흔 보다는 '왜, 아무리 걸어도 안내판의 거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일까? 번거롭고 짐만 될 것 같아 보이는 등산 지팡이도 장거리 산행에 무릎에 무리를 덜어주려면 필요한 아이템이구나.'등의 생각이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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