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회에서 준비해준 투어는 경주 남산 투어였다. 강사분의 재밌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 데 - 가이드라고 불렀다가 혼났다 -_-; - 덕분에 장대비 속에서도 괴롭지 않게 꽤 감동적인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사적 제219호로 지정된 배리 삼릉은 54대 경명왕, 53대 신덕왕, 8대 아달라왕의 릉이라고 '인정받고' 있다. '인정받고'라고 하는 표현은 물론 실제로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라의 왕릉은 불교를 공인한 법흥왕 이후로 불국토라고 여겨진 서악권에 위치하게 된다. 그래서 김씨 왕은 이곳에 묻히지 않았고 이곳은 박씨 왕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고 박씨 가문의 후손들이 주장하여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신라는 내물왕 이후 김씨가 왕위를 세습하게 되지만 말기에 진골출신이 왕위에 오르면서 박씨도 다시 왕위에 오르게 되어 8대왕과 53, 54대 왕이 같이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지만 몰락해가는 왕조의 왕릉이 이렇게 멀쩡할리 없다는 반론도 있어 물정에 밝은 후손이 멀쩡한 왕릉을 자기 조상의 무덤이라고 주장해서 인정받아버린 상황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숲에는 소나무가 많다. 서울의 남산에도 소나무가 많아 애국가의 가사에도 등장하고 경주의 남산에도 소나무가 우거져 있다. 소나무 중에서도 가장 향기가 진한 적송이라고 한다. 南산은 임금이 사는 곳 남쪽에 있는 산에는 늘 이런 이름을 붙여 옛날 수도 였던 곳에 남쪽에 산이 있다면 이런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한다. 남산은 바위가 많아 남성의 산으로 여겨졌고 맞은 편에 있는 望산은 부드러운 흙으로 덮여 있어 여성의 산으로 믿어져 왔다. 그리고 망산은 남산을 바라보는 형국으로 되어 있다. 바위가 많다 보니 경주의 남산에는 바위에 조각한 불상이 많이 있다. 토함산의 석굴암은 왕족을 위한 부처님의 세계였다면 남산은 일반 민중을 위한 부처님의 세계였다. '부처님을 만나러 힘들게 올라온 불자들을 늘 따뜻하게 맞아주는 부처님들을 뵈러 가자!'가 이날 짧은 여행의 주제였을 지 모르겠다.
설명을 해준 강사 분은 경주는 문화재가 너무 많아서 탈이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남아있는 유물이 귀한 백제나 고구려의 경우 조그마한 돌조각이 나와도 고고학계가 흥분을 하지만 신라 유물은 너무 많아 어지간해서는 문화재로 지정이 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신라의 전성기인 8세기에 만들어져 부처님이 입고 계신 가사의 끈까지 섬세하게 조각이 되어 있고, 나름대로 균형잡힌 형태가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있지 않다. 게다가 조선시대의 억불정책과 맞물려 목과 손이 떨어져 나가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남산 어딘가에 이 불상의 목이 남아 있을 수 있는 데 발견하면 700만원의 보상금이 책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 700만원은 그러나 땅주인과 발견자가 반반 소유하게 되고 그 반에서 다시 상당부분 세금을 가져가 실제로 목돈을 손에 쥐기는 힘든 데 그나마 누군가 몇년전 어느 불상의 목을 발견했으나 몇년째 보상금이 집행되고 있지 않다고 한다. 삼국전쟁의 승자인 신라의 유적임에도 후대에 꽤 고생을 하고 있는 불상이다. 불상 앞 제단에 놓인 바나나가 위안이 되려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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