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봄, 덕수궁을 찾았다. 코로나로 중단되었던 수문교대식이 재개되었는데 대한문이 수리중이라 옆에서 약식으로 진행하였다. 그래도 특이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지구를 걷는 법에서 덕수궁은 비극적인 역사를 갖고 있는 장소로 소개하고 있고 별3개 만점에 별2개를 주고 있다. 덕수궁은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이 있다는 것 이외에도 다른 궁궐들과는 조금 이질적인 특징이 있는데 출발이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다가 경복궁이 소실된 이후 궁궐로의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2022년 봄 대한문은 공사중이었다. 신기하게도 우리나라의 궁궐들은 분해 조립이 가능하고 공사를 통해 대한문의 원래 위치를 찾아주려는 듯 했다. 국사 시험문제에 잘 나오듯이 이곳은 아관파천 이후 고종이 환궁한 곳이고 당시 이름은 경운궁이었다. 우리는 아관파천을 하게 된 계기가 을미사변이었고 그래서 이곳을 비극의 역사로 기억하지만 일본 가이드북에서는 일본에 의해 1907년 강제퇴위된 고종이 이곳에서 말년을 보내면서 이곳이 덕수궁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점을 들어 이곳을 비극의 장소로 기술하고 있다. 일단 대한문이 다른 궁궐처럼 가운데 化가 들어가지 않은 것부터 덕수궁은 조금 이질적인 것 같다. 덕수궁의 메인 건물은 중화전인데 중화문을 통해 들어가게 되어 있다.
중화전은 본궁이자 정전으로 1906년에 재건되었다고 한다. 고종 황제가 이곳을 선호한 이유는 당시 주변에 러시아, 미국, 영국 공사관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일본의 시각에서 보면 어딘가로 도망가려고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하겠지만 적어도 고종황제 본인은 이이제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중화전은 1902년 건축할 당시 당시 창덕궁의 인정전을 모방하여 만들었고 황제가 직접 머물 공간이라 복층양식으로 격조있게 지었다고 한다. 메인이 아닌 창경궁의 명정전이나 경희궁의 숭정전은 단층이라 이곳을 더 격이 있게 지었다고 하는데 불행히 이후에 1904년 화재로 소실되고 1906년 재건할 때는 단층이 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종은 본인을 간도와 대마도를 식민지로 거느린 대한제국의 황제로 칭하였고 천정에 제후국을 상징하는 봉황이 아닌 황제국을 상징하는 용2마리를 넣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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