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의 둘레는 5 km정도여서 서울 4대문 보다 훨씬 작다. 그래서 '정조대왕이 정말 화성으로 수도를 옮길 생각을 했을까?'가 의문시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화성은 새로운 수도가 아닌 신도시로 건설된 곳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고. 하여간 5 km라는 말을 듣고 가볍게 볼 수 있겠다는 나의 생각은 초반에 조금 도전을 받았는 데 팔달문에서 서남암문까지 오르는 길이 꽤 급한 오르막길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사진에 성벽 사이로 보이는 기와지붕이 남포루(南砲樓)인데 화성에 있는 대포를 발사하기 위한 시설이다. 이 지점을 지나는 순간 가을 날씨에도 불구하고 꽤 땀을 흘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는 데 이 분위기로 5 km는 꽤 압박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이후로는 별다른 경사가 없었고 한 눈에 들어오는 수원의 모습이 꽤 멋지기도 했다.
암문(暗門)은 원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문을 만들어 적에게 들키지 않고 군수물자를 성안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군사시설이라고 하지만 이 서남암문은 꽤 예쁘고 멋진 모습이다.
왼쪽에 천막으로 가려진 건물은 장대, 오른쪽에 벽돌로 만들어진 제단같은 건물은 노대라고 한다. 장대는 장수가 성 주위를 살피면서 군대를 지휘하던 건물이고 노대는 제사를 지내는 건물이 아닌 위에서 쇠뇌를 쏘는 건물이라고 한다. 특히 서장대는 성 전체가 보이는 곳에 위치해서 화성 안에서도 대표적인 건물이라고 하는 데 누군가의 방화로 복원공사 중이었다. 며칠전에 지붕을 올리는 의식을 한 것도 같은 데. 중국이나 몽고군이 쳐들어오지 않는 요즘도 우리나라 문화재는 가끔 수난을 당하는 모양이다.
서장대에서 화서문으로 이어진 길은 성의 안과 밖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어서 독일의 로텐부르크같은 유럽의 성곽도시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물론 성 안과 밖의 모습은 매우 다르지만. 사진에 서북각루 안에서는 할머니 한분이 아이들에게 수원성에 대해 설명을 하고 계신 듯 했다. 그 위치를 지날 때 내 눈에 들어온 화서문과 서북 공심돈의 모습이 내 발길을 재촉해서 설명을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수원성의 4대문 중의 하나인 화서문은 문앞을 반원모양으로 둘러치는 담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고 오른쪽이 터져있는 것이 특이했다. 뒤에 보이는 공심돈도 화성이 아니면 찾아보기 어려운 건물인 데 안에 들어가서 적을 살필 수 있는 망루의 일종이라고 한다. 이 장면을 보고 있으니 우리나라 건축물은 건물 하나 하나의 화려함보다는 배치가 참 훌륭하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수원성곽에서 밖으로 튀어나온 부분으로 치(稚)와 적대(敵臺)가 있다. 치는 곡선형으로 튀어나와 있지만 적대는 각이진 모양이고 난간 위로 홈이 파져 있다. 2006년 현재, 난간 위의 홈은 관광객이 전망하는 곳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적대는 성곽보다 높게 축조하여 적을 감시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하고 북서적대에는 대포도 하나 놓여 있었다. 아이들마저도 대포보다는 바깥 풍경에 관심이 더 많아 보였지만. 사람들이 모두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걸로 봐서는 다들 장안문 쪽의 퍼레이드를 보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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