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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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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경주 시내 Part 2 지나가다 순흥안씨 종친회의 간판을 보았다. 순흥 안씨 이지만 서울에서 종친회를 구경해 본적이 없었던 나의 시선을 잠시 잡아 두었다. 몇 초 되지 않아 옆 방에서 자장면 시켜먹으며 바둑두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고 그냥 갈 길을 가게 되기는 했지만. 마차보다는 달구지에 가까운 느낌이 나지만 그래도 꽤 재밌어 보이는 마차가 경주의 왕릉 첨성대 지구를 다닌다. 요금은 3천원이라고 하니 일본의 인력거에 비하면 무지 싸기는 한 데 마부 아저씨가 일본의 인력거 꾼처럼 재밌는 가이드 역할을 해 줄 지는 조금 의문이 간다. 사진을 찍을 때는 지나가는 마차를 보는 것 만으로 만족했는 데 사진을 다시 보니 한번쯤 타보고 싶어진다. 경주는 2건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하나는 불국사와 석굴암이고 다른 하나는 ..
2006, 안압지 (임해전지) 백제,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신라의 왕실의 재정은 매우 풍부해졌다. 그래서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연못이 있는 별궁을 지었다. 그리고 연못이 바다같이 넓어 보여서인지 이름을 臨海殿이라고 붙였다. 어느새 신라는 국운이 다하고 신라의 마지막왕인 경순왕은 고려의 왕건과 전쟁을 하는 것을 포기하고 신라를 왕건에게 헌납하게 된다. 그래서 왕건을 이곳으로 불러 성대한 잔치를 열어주고 신라를 그에게 헌납하게 된다. 왕건은 후백제와의 경쟁에서 매우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고 결국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다. 고려태조가 이곳에 와서 신라를 그냥 먹게 되어 너무 기뻐하였고 경주는 더이상 한 나라의 수도(城)이 아닌 고을(州)이 되며 고려태조의 기쁨을 담아 경사스러운 마을 慶州가 되었다고 한다. 왕조의 전성기 때 생..
2006, 반월성 12세기의 역사책 삼국사기에는 "박혁거세 21년에 궁을 만들어 金城이라고 불렀고 지증왕 21년 금성의 동남쪽에 성을 만들어 月城이라고 불러 그 길이가 1023보에 달했다."라고 적혀있다고 한다. 이 성은 위에서 보면 반달모양이라 조선시대에 반월성으로 불렸고 지금도 반월성으로 불리고 있다. 그 사실은 불행히 항공사진을 보아야 확인이 가능한 부분이고 실제로는 흙과 돌을 섞어 만든 담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을 뿐이다. 어느 아저씨의 말처럼 '동네 낚시터도 이거보단 볼 품이 있겠다'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일본 가이드북의 멘트처럼 '그냥 동네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어 있다는 데 의의가 있을 지도. 사라진 왕조의 궁궐과 성이 온전히 보전되어 있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지 모르겠다. 게다가 그 왕조가 1000년 이상 전..
2006, 내물왕릉, 석빙고 내물왕은 국사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신라의 17대 왕이다. 중국식 왕호인 왕은 지증왕 이후에 사용되었고 내물왕의 당시 호칭은 내물마립간이었다고 들은 것 같다. 그러니 비석의 내물왕릉이라는 비석은 후대에 만들어졌다는 걸 알 수 있다. 내물왕은 왜구와 말갈족의 침입을 격퇴하고 이후 성골이 된 김씨에 의한 왕위 세습을 정착시킨 왕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석빙고는 경주에 있다보니 신라인의 유적이라는 편견이 생긴 듯 하다. 왠지 첨성대와 함께 신라의 과학을 상징하는 유적이라는 이미지. 그러나 석빙고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얼음창고이다. 첨성대에 대해 호평을 했던 Lonely planet과 지구를 걷는 법 모두 신라의 성곽인 반월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없다.'는 평을 하고 유일한 유적 비스무레한 놈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2006, 첨성대, 계림 파리를 여행할 때는 에펠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로마를 여행할 때는 콜롯세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내가 거기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다. 경주에서는 첨성대 앞에서 사진을 찍으니 '내가 경주에 와 있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불국사는 석가탑과 다보탑이 있지만 하나의 상징물로는 조금 애매하고 석굴암은 유리 벽 속에 있어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가 어렵다보니 역시 첨성대인 모양이다. 바깥에서도 살짝 보이는 첨성대를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서 안에서 보는 것의 유일한 위안도 그런 점일 지 모르겠고. 내 평가는 이렇게 짜지만 Lonely planet이나 지구를 걷는 법은 첨성대를 꽤 높이 평가하고 있다. 사용된 벽돌이 361개라 음력으로 1년의 날짜 수와 같고 27층인데 가운데 관측창을 중심으로 위에..
2006, 경주 시내 Part 1 경주역을 나서 유적지가 있는 곳으로 방향을 돌리자마자 릉을 만나게 되었다. 정말 백제나 고구려의 유적이면 잘 관리가 되었겠지만 워낙 릉이 많은 경주이다 보니 그냥 주택가 사이에 놓여있었다. 그나마 담장이 둘러져 있는 건 선택받은 존재라고 해 주어야 할지. 관광객의 입장에서야 역사가 숨쉬는 고장에 왔다는 걸 실감하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일본 나라에 갔을 때 '나라 마치'라고 불리우는 나라의 구시가를 보고 꽤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나라 경주의 골목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나라처럼 나무로 된 가옥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콘크리트 담벽 위를 기와로 장식하고 벽에는 페인트로나마 신라의 기와 문양 등을 그려 놓아 아무 기대없이 보면 꽤 괜찮게 느껴지게는 해 놓았다. 특히 네모 ..
2006, 경주, 남산 Part 3 남산에서 바라본 서라벌의 모습이다. 신라의 전성기였던 8세기의 경주는 인구 백만으로 당나라의 장안,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에 견줄만한 대도시 였다고 한다. 오늘의 경주는 인구 30만의 지방도시가 되어 서라벌에는 논밭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1200년 전 이곳은 건물이 가득찬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 였을 지 모르겠다. 남산의 선각 육존불이라고 불리우는 부조이다. 비스듬히 앞뒤로 있는 바위 절벽에 각각 삼존불이 그려져 있다. 이름은 육존불이지만 육존불은 없는 개념이고 두 삼존불이 하나는 현세 다른 하나는 내세의 부처를 상징한다고 한다. 선각으로 그려낸 부처님은 공들인 조각보다 볼품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입체로 깎아낸 조각이 표현하기 어려운 자유로운 선의 움직임이 감상의 포인트라고 한다. 잘 봐주면 ..
2006, 경주 남산 Part 2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와 같이 이곳까지 힘들게 올라온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어주는 마애관음보살상이라고 한다. 실제로 미소가 꽤 아름답다. 마애불은 절벽에 조각을 한 것이고 어떻게 조각을 했을까는 의견이 분분하다. 사다리를 썼을 지도 모르고 흙으로 단을 쌓아 그 위에서 작업을 했을 지도 모른다. 원래는 석굴암도 그랬듯 채색이 되어 있어서 지금도 입술에 붉은 기운이 조금 남아 있다. 그래도 이 불상은 경북 유형문화재 19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불상을 많이 본 사람의 눈으로 보면 왼손에 정병을 든 자세가 꽤 특이하다고 하는 데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런가보다 할 수 밖에 없다. 남산은 바위가 많아 남성의 근육을 연상시켜 남자의 산으로 여겨져 왔고 산을 오르다보면 재미있는 형태의 바위들을 가끔 볼 수가 있다. 사진에..
2006, 경주 남산 Part 1 학회에서 준비해준 투어는 경주 남산 투어였다. 강사분의 재밌는 설명을 들을 수 있었는 데 - 가이드라고 불렀다가 혼났다 -_-; - 덕분에 장대비 속에서도 괴롭지 않게 꽤 감동적인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사적 제219호로 지정된 배리 삼릉은 54대 경명왕, 53대 신덕왕, 8대 아달라왕의 릉이라고 '인정받고' 있다. '인정받고'라고 하는 표현은 물론 실제로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라의 왕릉은 불교를 공인한 법흥왕 이후로 불국토라고 여겨진 서악권에 위치하게 된다. 그래서 김씨 왕은 이곳에 묻히지 않았고 이곳은 박씨 왕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고 박씨 가문의 후손들이 주장하여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신라는 내물왕 이후 김씨가 왕위를 세습하게 되지만 말기에 진골출신이 왕위에 오르면서 박씨도 다시 왕위에 ..
2006, 경주역, 교육문화회관 경주는 내 나이 또래의 서울 사람들에게는 수학여행 장소로 기억에 남게 된다. 중학교의 졸업여행으로 이듬해 고등학교의 수학여행으로 경주에 와서 포석정, 불국사, 석굴암, 감포의 대왕암, 부산의 통도사, 포항제철 등을 본 적이 있는 데 어느새 가물가물한 곳이 되어 버렸다. 선생님의 통제에 따라 끌려다니는 여행이었는 지 아름다움을 느낄만한 심미안이나 정신적 여유가 없었는 지는 몰라도 정말 기억이 엷어졌다. 사진의 다보탑을 보아도 수학여행때 본 기억보다는 십원짜리 동전의 이미지가 더 강하니. 그래서 경주를 다시 보기로 했다. 분명 다른 감동을 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경주를 기차를 타고 가본 건 처음인 것 같다. 이전엔 모두 버스를 이용했으니. 경주 버스터미날은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 지 모르겠지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