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를 찾아서 (34) 썸네일형 리스트형 2024 서울, 방이동, 석촌동 고분군 백제 왕가의 길?은 풍납토성, 몽촌토성, 방이동 고분군, 석촌동 고분군으로 이어진다. 방이동 고분군은 상대적으로 덜 들어본 것 같다. 서울 안에 조선왕릉 이외에 고분군이 있다는 게 일단은 신기했다. 고분의 모습은 특별하지 않아 뒤에 롯데월드가 나오게 사진을 찍어야 이곳이 방이동임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분군이라는 말처럼 여러개의 고분이 모여 있었다. 고분은 굴식 돌방무덤인데 이 방식의 무덤이 아주 발달하기 전이라 내부에 벽화가 멋지게 있거나 하지는 않고 단지 도굴이 쉬워 부장품이 대부분 도난당했다고 한다. 하긴 위치가 명확히 알려져 있는데 1500년간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면 이상할 것이다. 이곳은 방이동 백제 고분군이라고 불리우다 방이동 고분군으로 이름에서 백제가 빠졌다고 한다. 출토된 유물.. 2024 서울 몽촌 토성 백제 왕가의 길?이라고 안내하는 길을 따라가면 풍납 중학교 옆에 지하 보도에 전시실이 있고 여기를 지나서 좀 가면 칠지도의 모형이 나온다고 되어 있다. 이 조형물 예전에 지나가다가 본 적이 있는데 칠지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히 선인장이라고 생각했고 장소가 올림픽 공원이고 멕시코 시티도 올림픽 개최도시 중 하나이니 멕시코와의 뭔가를 기념하기 위해 선인장 조형물을 설치했다고 생각했다. 왠걸 정체가 칠지도였다. 칠지도를 왜 이렇게 통통하게 만들었으며 거울 조각을 붙여 놓은 이유는 무엇일까? 몽촌토성 또한 그냥 동네 언덕으로 여겨지다가 올림픽 공원이 조성될 당시에 고고학계에서 위례성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여 원형이 보존되게 되었다고 한다. 오히려 주변이 공원으로 개발이 되어 보다 예쁘게 단장이 되어 있다... 2024 서울, 풍납토성 공주와 부여는 백제의 2번째, 3번째 수도이고 백제의 첫 번째 수도는 한강 유역의 위례성이다. 위례성에서 백제는 웅진과 사비보다 훨씬 오랜 기간을 보냈고 전성기를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에게 함락당했고 이후에 백제는 멸망을 하였고 1500년의 시간이 흘러 원형이 보존되어 있을 리가 거의 없다. 역사적인 기록도 조금 애매해서 위례성의 위치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아 하남이나 천안이라는 설도 있다. 아직도 논란은 있는 것 같지만 2000년대 이후에는 풍납 토성이 대세로 굳어지는 듯 했다. 원래는 4 km정도의 규모라고 하나 지금은 반 조금 넘게 남아 있는데 항공 사진으로 보면 꽤 멋지다. 항공사진으로 멋지다고 한 건 실제로 보면 별로라는 의미도 조금은 포함하고 있다. 풍납토성은 풍납동에 있고 풍납동은.. 2024 부여, 궁남지 야경을 위해 아껴두었던 궁남지를 찾았다. 밤보다는 해질녘에 가고 싶었는데 기대했던대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같은 색감이 나왔다. 때마침 초승달이 연못에 비춰져 더욱 멋졌다. 감탄하는 순간 소리가 나서 놀랐는데 분수가 작동되기 시작했다. 어둠이 짙게 드리우니 궁남지로 이어지는 다리가 더욱 화려하게 보였다. 궁남지의 야경도 버켓리스트였는데 하나 해결한 것 같다. 2024 부여 국립부여박물관 2 부여 능산리사지에서 발견된 유물 중에 금동대향로 다음으로 유명한 놈이 이놈이라고 한다. 석조사리감인데 국보 288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무덤의 입구처럼 위쪽이 아치형으로 생긴 터널처럼 깎아 놓았는데 그냥 얼핏 보았을 때는 굳이 금동대향로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이놈이 왜 국보가 되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표면에 새겨진 글자에 가치가 있다고 한다. 북조의 예서체로 써 있는 글씨인데 내용이 명확하게 확인이 되어 능산리사가 성왕의 아들인 위덕왕이 567년에 창건했다는 내용을 알 수 있다고 하고 현재 백제 시대의 글자가 남아 있는 것으로 무령왕릉 지석과 함께 매우 귀중한 자료라는 것이다. 그냥 볼거리로만 보았을 때는 석조사리감보다 서산마애삼존석불의 모형이 더 눈을 끌기는 했다. 유적에서 .. 2024 부여 국립부여박물관 1 예전에 부여를 찾았을 때 휴관이어서 들어가지 못했던 국립부여박물관을 찾았다. 왕릉원에서 부여 시내로 가는 버스가 있는데 배차간격이 1시간 정도이고 언제 올 지도 불분명해 택시를 이용해서 이동했다. 택시 요금은 7000원이 나왔다. 이곳의 가장 핵심 전시물은 백제금동대향로일텐데 2024년 2월 12일까지는 기획전시관에서 기획전과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아래는 용, 꼭대기에는 봉황이 있고 중간에 산과 악어, 코끼리 같은 동물들, 상상의 동물들, 활을 쏘는 사람, 피리를 부는 선녀 등이 정교하게 들어가 있다. 너무 새것같이 만들어 놓아서 놀라웠다. 밀납으로 정교하게 모형을 만들어 주조하고 일부는 전체 몸통을 주조한 후 결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었고 금박을 위해 수은 아말감 기법을 활용했다고 하는데... 금동대향로.. 2024 부여 능산리사지, 나성 고분군 서쪽에는 능산리사라는 절의 터가 남아 있다. 백제의 성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유명한 금동대향로가 이 절터의 서쪽 부속 건물터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돌계단만 남아 있는데 바닥에 초록색 풀이라도 있다면 조금 덜할 것 같은데 겨울에는 더 황량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절터에 조금더 가까이 가 보면 이런 모습이다. 목탑이 있던 자리에 금동 대향로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국보인 석조사리감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원래 이 자리에 능산리사를 복원할 계획도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 백제 문화단지에 부여궁과 함께 1:1 크기로 복원을 해 놓아 이곳은 그냥 지금 상태로 남게 될 것 같다. 능산리사 옆에는 언덕이 있는데 부여의 나성이라고 한다. 부여의 서쪽은 금강이 천연 해자 역할을 하고 부소산.. 2024 부여 왕릉원 아트 뮤지엄 부여 왕릉원에는 박물관이 있는데 박물관도 무덤처럼 생겼다. 그냥 박물관이라는 이름 대신에 아트 뮤지엄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내부 전시물을 보니 이해가 되었다. 안에 유물은 없고 유물 유적은 모형이나 3차원 홀로그램으로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가운데 아이맥스 스크린으로 금동대향로나 부여 고분군의 사신도 관련 영상을 틀어 준다. 청룡이 색상이 잘 보존되어 있다면 이런 모습인 것 같다. 왕릉 옆에는 부여로 수도를 옮겼지만 신라 진흥왕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성왕을 기르는 능산리사가 있었고 중앙에 큰 목탑과 1금당으로 구성된 절이었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유명한 금동 대향로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고 절의 모형은 박물관 한 쪽에 전시되어 있다. 2024 부여 왕릉원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지도 앱에서 찍어보니 걸어가려면 1시간 가까이 걸려서 택시를 이용했다. 구드레 조각공원에서 왕릉원까지는 8000원정도 나왔고 시간은 8분 정도 걸렸다. 고분군은 발굴 중이라 별로 볼 것도 없는데 입장료를 받는다는 불만을 읽은 적도 있는데 입장료는 1000원으로 저렴했고 내부의 볼거리도 충분히 그 값은 하는 것 같았다. 고분군 중 하나는 문이 발굴이 되어 노출되어 있다. 대신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언덕 너머 쪽에 같은 크기의 모형으로 재현되어 있다. 벽돌 무덤으로 유명한 공주의 무령왕릉도 같은 상태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백제 고분 특징인 굴식 돌방 무덤이었다. 횡혈식 석실분이 내가 고등학교 갈 당시에 굴식 돌방 무덤으로 용어가 바뀌었는데 어렵기는 마.. 2024 부여 황포돛배 낙화암을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람선을 타는 것 같다. 고란사 옆에 선착장이 있고 유람선을 타고 낙화암을 볼 수 있다. 유람선은 고란사에서 구드레 나루터까지 10분 정도 운항하고 승선료는 6000원이었다. 때 마침 유람선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유람선을 타러 내려갔다. 유람선에는 서동호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드라마 서동요로 유명해졌는데 서동이 선화를 사귄다는 노래를 아이들에게 가르쳐 선화공주를 부인으로 얻었다는 이야기인데 요즘도 어려운 동서화합을 전쟁하는 적국인 상태에서 했다는 게 더욱 놀랍다. 유람선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나무로 꾸며져 있다. 유람선 바깥은 이렇고 갑판에서 낙화암을 볼 수 있다. 낙화암은 강에서 바라보면 이렇다. 사진에 잘 나오지 않았지만 빨간색으로 낙화암이라고 써 놓은 글씨가 있.. 이전 1 2 3 4 다음 목록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