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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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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부여, 부소산성 Part 1 공주의 공산성과 마찬가지로 부여의 부소산성도 백제의 유적이기 보다는 조선시대 이후 산성의 모습을 많이 갖추고 있다. 부소산성에서 처음만난 건물인 정려각도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갖고 있다. 백제의 3대 충신이라고 하는 성충, 홍수, 계백 3사람의 신위를 모신 삼충사의 모습이다. 역사속의 의자왕은 퇴폐적인 폭군으로 그려질 때가 많지만 일본이 원군을 보내주고 충신이 최후까지 백제를 사수하는 걸 보면 승자의 역사 속에 패자의 모습이 왜곡되어 진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소산성에 있는 영일루의 모습이다. 해를 맞이하는 누각이란 뜻인데 백제의 왕은 매일 이곳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국정을 구상했다고 한다. 지금은 나무가 우거져 떠오르는 태양을 잘 볼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지구를 걷는 법'에 쓰여있는 것..
2009, 부여 역사적인 도시이지만 지금은 조그만 시골도시라는 소개를 받고 있는 부여를 찾았다. 시외버스터미널은 시골 터미널 분위기라고 가이드북에는 나와있지만 그래도 간판은 바뀌어 깔끔한 모습이었다. Lonely planet에는 부여 사람들이 traditional minded 하다고 표현해 놓았는데 적어도 버스 안에서 본 부여 사람 중에 traditional looking 한 할머니가 많아 과거로 시간여행하는듯한 기분을 안겨 주었다. 부여로 백제의 수도를 옮긴 백제의 성왕의 동상은 부여를 지키고 있다. 백제의 중흥을 이루려고 했고 신라와 동맹하여 한강 하류를 잠시 회복했다가 배신한 신라의 진흥왕에게 빼앗긴 불운한 최후를 맞은 왕인데 적어도 부여에서는 영웅인듯 하다.
2006, 공주, 국립 공주 박물관 무령왕릉에 전시된 유물들은 모두 복제품이고 진품은 국립 공주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무령왕릉을 나와 국립 공주박물관으로 향했다. 안내 지도 상으로는 매우 가까운 곳인 데 잘 보이지 않아 무령왕릉 입구에서 표파는 아저씨한테 물어봤다. 나: 여기서 박물관은 어떻게 가죠? 아저씨: 주차장에서 우회전이요. 이 말을 듣고 갔는 데 주차장 옆에 박물관은 보이지 않았다. 주차장 옆길을 쭉 따라서 10여분 걸어가야 하는 거리였는 데 유적 지역이라 길을 돌아가야만 하는 게 좀 귀찮긴 했지만 가는 길에 복원해 놓은 조선시대의 관아건물이 있어서 그래도 발품이 아깝지 않게 해 주었다. 충청도시정사의 건물이 조선시대에 임진왜란을 겪으며 공주로 옮겨왔고 그때 그 내부의 건물로 지어진 건물이 선화당이라고 한다. 지금은 옆에..
2006, 공주, 무령왕릉 Part 2 송산리 고분군에서 가장 높은 곳에 1, 2, 3, 4호분 고분이 있다. 고분들이 몰려서 붙어 있는 모습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백제 왕들은 죽어서도 조상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물론 모두 문은 닫혀있다. 모형관에는 홀로그램으로 만든 모형 영상물이 있어서 백제의 할아버지로 보이는 사람이 구경온 아이들에게 송산리 고분군을 설명하게 되어 있고 이 곳에서 시작을 한다. 언어가 한국어랑 영어는 없이 일본어로만 되어 있는 것이 신기했다. 하긴 한국 백제 옷을 입은 할아버지랑 한국 아이들이 영어로 이야기하면 이상할 것 같기는 하다. 송산리고분 5, 6, 7호분은 모두 굴식 돌방무덤이고 독특한 내부로 유명하다. 불행히 내부는 볼 수 없고 모형관에 있는 모형을 봐야만 한다. 무령왕릉 고분 앞에서 다시 나에게 잘 ..
2006, 공주, 무령왕릉 Part 1 점심을 먹고 무령왕릉으로 향했다. 공산성에서 무령왕릉으로 이어진 길 입구에는 무령왕릉의 벽돌같은 테마의 문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무령왕릉이 1997년 이후 보호를 위해 폐쇄되어 내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모르던 나의 가슴을 들뜨게 했다. 무령왕릉은 송산리 고분군이라고 불리우는 고분들 중 7호 고분이다. 송산리 고분군으로 가는 언덕길의 언덕 아래에는 주택가가 있는 데 이제는 서울에선 보기 힘든 색기와의 단층집들이 정감있게 느껴졌다. 송산리 고분군에 들어서면 모형관이 먼저 보인다. 이때까지만해도 무령왕릉 내부가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는 모형 하나 전시하면서 뭐 이렇게 그럴싸하게 만들어 놓았을까라고 생각하면서 고분처럼 만든 모형관에 들어섰다.
2006, 공주, 고마나루 공산성을 구경하니 점심때가 되었다. 공산성 바로 앞에 Lonely planet과 지구를 걷는 법 모두 추천하고 있는 음식점이 있어서 가 봤다. 가이드북 뿐 아니라 각종 TV 여행 프로그램에도 자주 등장했던 모양이다. 웅진은 곰의 나루라는 뜻인 데 곰을 고마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일본말로는 구마인데. 그리고 일본에서 高麗를 '고마'라고 발음하고 사이타마에 이런 지명이 있다. 단군의 어머니가 원래 곰이어서인지 그 모티브는 백제의 2번째 수도에 까지 남아있는 듯 했다. 그리고 공산성 앞에 있는 음식점의 이름에 까지. 고마나루라는 식당은 제법 손님이 붐비는 식당이었다. 돌솥밥을 시켰는 데 가격은 5천원. 뭐 서울 놀부의 돌솥밥도 가격은 이정도 이니 싸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그러나 밥이 나오기 전에 깔리는 반찬..
2006, 공주, 공산성 Part 3 공산성 안에는 영은사라는 절이있다. 백제시대의 절은 아니고 조선 세조때 지어진 절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천혜의 요새였던 곳이어서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건물 하나하나의 조형성이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방송으로 틀어놓은 스님의 불경을 읽는 소리, 사진에서는 잘 안보이지만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가 우리나라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느낌을 주어 좋았다. 영은사의 불전 전면의 벽화는 스토리가 있어서 재밌었다. 맨 오른쪽의 그림은 잘렸지만 소를 찾아 나서 소를 발견하고 그 소를 만나는 부분이 그려져 있다. 사진에 보이는 부분은 오른쪽부터 소를 길들이고 2번째 그림처럼 길들인 소가 점점 흰색으로 변해간다. 세번째 그림은 완전히 흰색으로 변한 소를 타고 있고, 네번째 그림은 그 소를 떠나보내..
2006, 공주, 공산성 Part 2 공산성의 남쪽문인 진남루의 모습이다. 다른 문들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에 공산성을 개축하면서 만들어졌고 네모 반듯한 돌로 쌓아올린 네모 반듯한 문이 특이하다. 1993년에 지어진 복원된 건물이긴 하지만 공산성에 있는 유일한 백제 시대의 건물인 임류각이다. 백제는 고구려의 장수왕이 위례성을 공격할 때 개로왕이 전사하고 문주왕이 웅진으로 천도한 이후 동성왕에 이르러 어느정도 자리가 잡히게 된다. 수도로서 웅진이 자리를 잡고 동성왕은 연회를 할 수 있는 건물을 지었고 그 건물이 임류각이라고 한다. 일단 건물만을 봐서는 일본 건물처럼 지붕이 좀 가파르고 크다는 인상 정도를 받는다. 임류각에서 조선시대의 나머지 건물들과 다른 특징은 가파른 지붕의 형태와 함께 천정과 기둥 윗부분에 그려진 단청일 것 같다. 백제시대에..
2006, 공주, 공산성 Part 1 공산성은 백제의 웅진성이 모태가 되고 조선시대에 개축한 성이다. 고구려의 장수왕의 남하정책으로 개로왕이 전사하고 도읍이었던 위례성을 잃은 백제의 문주왕 - 삼국사기에 이 분이 좀 소심했다는 표현이 있다.- 은 외적방어에 유리한 웅진-지금의 공주-로 도읍을 옮긴다. 조선시대에도 이 성이 천혜의 요새라는 것이 인식되어 선조, 인조시대에 성을 쌓아 올리게 된다. 강화도의 고려궁터마저 원래의 모습은 별로 남아있지 않고 조선시대의 도호부터의 흔적이 그나마 남아 있는 것처럼 이곳도 웅진성의 모습보다는 조선시대의 산성의 모습으로 강하게 남아있다. 그나마 많이 파괴되어 아직도 많은 곳이 복원공사 중이고 정문 역할을 하는 금서루는 1993년 복원된 건물이라고 한다. 공주의 공산성은 조선시대의 역사에 더 자주 등장하는 것..
2006, 공주, 금강교 시외버스터미날에서 금강을 건너야 웅진성이 기본이 되어 만들어진 공산성에 갈 수 있다. 금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중 하나가 금강교이다. 특이하게도 일방통행인 다리이고 오른쪽이 차도 왼쪽은 자전거와 사람이 다니는 길이다. 관광 팜플렛에서는 이 다리도 아름답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내 생각엔 글쎄다. 백마강이라고 불리우기도 한 금강은 한강, 낙동강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긴 강이다. 한강 옆의 위례성에 첫 도읍을 잡고 한강의 농업 생산성과 수운 능력 그리고 대 중국 무역이 가능한 것들을 활용해서 번성했던 백제였기에 이곳에 새 도읍을 정했는 지도 모르겠다. 이런 것들을 뒤로하고 일단 첫눈에 보았을 때 강을 따라 첩첩이 쌓인 산자락이 아름다웠고 슬쩍 보이는 공산성의 공북루가 발길을 재촉했다. 공주는 역사책에 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