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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를 찾아서

2024 부여 능산리사지, 나성

고분군 서쪽에는 능산리사라는 절의 터가 남아 있다. 백제의 성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유명한 금동대향로가 이 절터의 서쪽 부속 건물터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돌계단만 남아 있는데 바닥에 초록색 풀이라도 있다면 조금 덜할 것 같은데 겨울에는 더 황량하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절터에 조금더 가까이 가 보면 이런 모습이다. 목탑이 있던 자리에 금동 대향로에 가려지기는 했지만 국보인 석조사리감이 출토되었다고 한다. 원래 이 자리에 능산리사를 복원할 계획도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 백제 문화단지에 부여궁과 함께 1:1 크기로 복원을 해 놓아 이곳은 그냥 지금 상태로 남게 될 것 같다.

 

능산리사 옆에는 언덕이 있는데 부여의 나성이라고 한다. 부여의 서쪽은 금강이 천연 해자 역할을 하고 부소산성을 쌓았고 동쪽을 지키는 성곽으로 나성을 축조했다고 하는데 수업 시간에 성왕이 천혜의 요새였던 웅진이 협소하여 방어가 조금 어렵더라도 주변으로 확장할 수 있는 부여로 수도를 옮겼다고 들은 것 같다. 성왕은 한강유역을 수복하기 위해 목숨을 걸 만큼 노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백제는 마한 지역에 대한 중앙 지배력을 키우고 가야 땅을 복속시키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장수왕처럼 백제도 남하 정책을 펼친 것이고 부여로 천도를 한 것도 그런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하시는데...

 

부여의 나성을 올라가서 보면 이렇게 생겼다. 밤에 조명을 하면 멋질 것 같다.

 

능산리사와 왕릉 사이에 의자왕과 부여융의 무덤을 조성해 놓았다. 서해를 통해 당나라 군이 침공해 왔을 때 의자왕과 왕세자였던 부여융은 방어에 유리한 웅진으로 도망갔는데 부여가 함락되고 당나라 군이 웅진에 왔을 때 5일 만에 항복을 하고 당나라에 압송되었다고 한다. 당나라의 낙양 어딘가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하는데 부여 왕릉원 한쪽에 그들의 가묘가 조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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