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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근교로

2023 가을, 남한산성 행궁

1년만에 남한산성 행궁을 다시 찾았다. 한남루가 우리를 맞았는데 추석연휴라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고 무료로 한복도 빌려입을 수 있었다. 곤룡포를 빌려입고 남한산성 행궁 구경에 나섰다.

 

평소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내행궁 내부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인조는 이곳에서 주화파인 최명길, 척화파인 김상헌 사이에서 큰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이 공간은 난방이 되지 않았다고 하는데 더욱 괴로웠을 것 같다.

 

가운데 방은 난방이 되지 않고 왕과 세자가 각각 기거했던 좌우의 방에는 난방이 공급되었다고 한다. 매운 연기가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구운 숯으로 난방을 했고 하루에 여러번 궁녀가 숯을 갈아야 했다고 하는데... 어쨌든 평소에 들어갈 수 없는 이 공간에 들어가고 이불에 앉아볼 수도 있어 색다른 경험을 했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광주유슈가 관리하던 곳이라고 한다. 경기도 광주는 당시에 현재의 송파구나 서초구를 포함하는 중요하고 넓은 지역이었다고 한다. 건물의 이름은 앉아서 이기는 집으로 지었지만 병자호란 당시에 편하게 앉아 있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강화도가 아닌 이곳으로 도망을 온 것 부터 장기전에는 불리했을 것이다.

 

화성행궁 옆에는 좌전이라는 공간이 있다. 종묘의 축소판 같은데 종묘의 두 건물인 정전과 영녕전이 있다. 피난을 가는 순간에도 종묘의 신주를 모셔오고 그 복잡한 순간에도 영녕전에 계시던 분들과 정전에 계시던 분들을 차별?해서 모셨다고 한다. 

 

문화해설사 분이 이위정이라는 정자인데 정자의 이름이 써 있는 현판보다 뒤에 있는 현판이 더 중요하게 설명하신다. 이유는 뒤의 판에 써 있는 글씨를 조선 후기의 명필 김정희가 썼기 때문이다. 추사체가 확립되기 전에 기존 명필의 느낌이 나는 해서체의 초기 작품이라 고유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