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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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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서울 시청, 세종 문화 회관 월드컵때 모인 인파로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서울시청의 모습이다. 서울이 이제는 너무 커져서 너무 좁다는 말과 함께 새로 시청사를 짓고 있는 듯 했고. 내가 잠시 지나쳤을 때는 유방암 퇴치 캠페인의 일환으로 핑크색으로 조명을 하고 있었다. 서울 시청뿐 아니라 전세계의 몇몇 유명 건물을 그렇게 조명하고 있고 도쿄타워도 그렇게 조명했다는 데 왜 난 본적이 없는 것 같을까? 내가 있는 건물 옥상에서 도쿄타워가 늘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2006년만 해도 서울시청은 이 건물을 사용했던 것 같다. 2023년 현재 이 건물 뒤에 유리로 만든 파도 같은 건물이 생겨서 서울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고 이 건물은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석가탄신일이 다가오면서 시청 앞에 조형물이 들어섰다. 석등모양으로 생긴 것으로 보..
2006, 덕수궁 주변 덕수궁과 이웃하고 있는 대한성공회교회의 모습이다. 덕수궁을 구경할 때 가이드분이 옛 덕수궁 사진을 자료로 보여주실 때도 있었던 걸로 봐서는 꽤 유서깊은 교회인 모양이다. 위에서 보면 십자가 형태로 보일 것 같은 디자인의 각진 건물에 붉은 색 기와가 인상적이다. 덕수궁은 외국의 공관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지금도 영국대사관이 둘러싸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라고 하는 덕수궁의 돌담길도 경찰의 호위를 받고 있다. 예전에는 러시아 공사관도 붙어 있어서 '아관파천'이라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덕수궁 뒤의 정동 골목을 지나가면 2곳의 학교가 나온다. 하나는 예원중학교고 다른 하나는 이화여고다. 이화여고 안쪽으로는 서울성곽의 흔적도 조금 남아 있다. 그보다도 신기하게 느껴진 건 학교 벽..
2006, 덕수궁 Part 2 회랑으로 이어진 쌍동이 건물 즉조당과 준명당이다. 덕수궁은 원래 궁궐이 아니었다.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었는 데 임진왜란때 왕궁이 모두 불타고 남아 있는 건물 중에서 가장 쓸만한 건물이었던 건물을 임시로 왕궁으로 쓰면서 역사에 등장했다. 그리고 사진의 오른쪽 건물인 즉조당에서 2명의 임금이 즉위를 한다. 광해군과 인조. 왼쪽의 준명당은 가운데 명이라는 글자가 日변이 아닌 目변의 밝을명자로 되어 있다. 눈을 뜨고 밝게 보라는 의미라고 하는 데. 일본인 교사를 고용하여 덕혜옹주가 유치원 교육을 받았던 곳이라고 한다. 60대에 덕혜옹주를 볼 정도로 정정했던 고종황제는 덕수궁에서 승하하는 데 건강하셨다 보니 일본에 의한 독살설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덕수궁에 있는 이 세종대왕 동상은 광고를 비롯한 여러 ..
2006, 덕수궁 Part 1 계속 수리중이었던 덕수궁 대한문이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는 위병도 지키고 있다. 대한문은 원래 정문 역할을 하는 남문이 아니고 동문이라고 한다. 보통 정문역할을 하는 남문의 경우 가운데 '화'라는 글자를 넣는다고 한다. 경복궁의 남문은 '광화문' 창덕궁의 남문은 '돈화문'이 된다. 불행히 덕수궁의 남문은 남아있지 않다. (덕수궁의 대한문은 다시 수리에 들어갔다.) 덕수궁도 다른 궁궐과 마찬가지로 개울이 흐르고 금천교라는 다리가 있다. 금천교의 금이 보통 禁인 경우가 많아 천하고 악한 것이 이곳을 넘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는 데 가끔 錦을 쓰는 금천교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물인 중화전으로는 중화문을 통해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중화문 처마 밑에는 새들이 집을 못짓게 만든 부시라는..
2006, 숭례문 이제는 KTX 서울역이 옆에 더 삐까뻔쩍하게 생겨서 역할이 좀 줄어들긴 했지만 서울역은 우리나라의 근대 건축물 중 대표적인 놈 중 하나로 되어 있다. 독일의 어느 건축가라고 하는 데 회색 프레임에 적벽돌을 좋아하는 건축가였고 암스텔담의 중앙역, 동경역 등도 다 그의 작품이라고 한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서울역과 동경역의 건축가는 정확하게 그 분은 아니고 그 분의 제자인 일본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하여간 이러한 설명을 듣고 암스텔담 중앙역이나 동경역을 기대를 갖고 바라보지만. 그때의 느낌은 '글쎄. 이게 서울역하고 닮은 것인가?'였다. 물론 다들 회색 프레임의 적벽돌이긴 하다만. 우리는 모두 남대문이 국보 제1호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 건물의 원래 이름이 숭례문이라는 것도. 숭례문이..
2006, 남산 Part 2 남산은 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 있다. 희미한 기억으로 4호선 회현역에서 내려서 리라초등학교, 숭의여고 근처를 지나다 보면 케이블카 타는 곳이 나왔고 거기서 타고 올라갔던 걸로 기억한다. 2006년 봄에 찾았을 때는 서울 성곽을 본답시고 열심히 걸어서 올라와 버려서 그냥 사진을 찍는 걸로 만족했다. 밤에 봐야 동대문이나 명동 쪽에 불이 들어온 모습이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이 순간은 케이블카를 탈 베스트 타이밍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벚꽃은 일본을 많이 연상시킨다. 중국에서 온 학생과 벚꽃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 데 그 학생은 '중국에는 벚꽃이 없는 데 한국에 벚꽃이 많은 건 신기하다. 아마 일제 시대에 일본 사람들이 잔뜩 심어 놓고 간 게 남은 것 같다.'라고 했는 데 나는 주워 들은 ..
2006, 남산 Part 1 서울에서 꽃구경을 하는 가장 대표적인 곳은 여의도의 윤중로일것 같다. 엄청난 인파와 번데기의 향기?가 좀 안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기도 하지만. 잘 몰랐는 데 남산이 그 다음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 같다. 남산 하면 애국가 가사처럼 소나무의 이미지였는 데 생각보다 벚꽃도 많이 있는 곳이었다. 우리나라의 봄은 일본의 봄과는 다른 색을 보여준다. 개나리의 노란색 덕분에. 애국가에도 등장하는 남산의 소나무다. 일본은 화산암이 풍화하여 땅이 깊어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하는 삼나무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화성암이 풍화한 곳이라 흙이 얕고 바로 암반층이 나와 뿌리를 깊게 내리지 않는 소나무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남산에는 소나무가 많았다. 남산하면 아마 팔각정과 지금은 서울타워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는 남산타워가 생각날..
2006, 서울성곽 사진 속의 문 이름은 광희문이다. 광화문의 오타가 아니다. 서울에 광희문이라는 문이 있다. 4대문 이외에 서울 성곽을 드나드는 문 중의 하나이고 신기하게도 이 놈은 문 옆에 성벽이 좀 붙어 있다. 이 놈을 보니 정말 서울이 성곽으로 둘러 쌓였었다는 게 믿어졌다. 예전엔 농구경기 중계를 많이 하던 곳이었는 데 올림픽을 치르고 나서는 농구경기 마저도 올림픽 경기장으로 빼앗겨서 요즈음엔 어떤 행사들을 하는 지 의아한 곳이다. 이제는 장충동 하면 족발이나 옆에 남산쪽에 있는 소피텔이나 타워호텔같은 호텔에서 누군가가 결혼을 하면 가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되어가는 것 같다. 어찌되었든 이번에는 신라호텔 뒤에 숨어 있다는 서울 성곽을 보러 왔다. 장충체육관 뒤쪽으로 서울성곽이 꽤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겨울연가에..
2006, 동대문 (흥인지문) 서울은 우리나라 지명중에 순수한 한글로된 유일한 지명이다. 백제의 위례성이 서울 부근이고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이기는 했지만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건 조선의 건국과 함께 이곳이 도읍이 되면서부터이다. 태조는 조선을 세우고 성곽을 쌓아 이곳에 도읍을 꾸몄다. 흥인지문은 그 성곽의 동쪽문이었고. 복원이 된 부분이 많고 미적, 역사적으로 숭례문에 밀려 국보보다는 격이 처지는 보물1호가 되어 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성곽이 파괴된 숭례문과 달리 동대문 부근은 서울 성곽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서울 촌놈인 나로서는 이대병원이 여기에 있는 것도 신기하게 느껴진다. 어느날 어느 쇼프로나 드라마에 연예인이 어떤 옷을 입고 온다면 바로 그 다음날 이 동네에 있는 옷가게에 그 옷이 걸린다. 일본 여성이 어느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