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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야기

2024년 1월, 독립문

독립협회가 만든 독립문의 모습이다. 독립문은 일제 강점기 이전 구한말에 만들어졌고 독립이라는 의미는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닌 모든 외세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고 한다. 원래 이 자리에는 영은문이라는 청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문이 있었는데 이를 철거하고 독립문을 세웠다고 하니 굳이 따지면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앞에 있는 구조물은 예전에 있던 영은문의 흔적인 것 같다. 원래 둘 사이는 더 멀었는데 도로 정비 과정에서 독립문 위치를 70 m 정도 옮겼다고 하고 그러면서 더 가까워진 것 같다. 파리의 개선문을 보고 만들었다고 하는데 좀 그렇다. 서재필의 스케치를 보고 독일 공사관에서 일하던 스위스인 건축가가 설계하고 조선의 건축가가 세웠다고 하는데 파리의 개선문 같은 작품이 나오려면 조각가도 섭외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위에 독립문이라는 글자는 이완용 또는 김가진이 썼다는 설이 있고 한다. 두 사람다 한글 필체가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하게 알기는 어려운데 이완용은 동아일보의 기사가 김가진은 후손의 증언이 근거이다. 동아일보 기사가 조금더 무게가 갈 수도 있지만 동아일보도 당시 동네사람의 전언을 쓴 것이라 좀 애매하고 서예가 김선원은 한자 필체로 추정해 보았을 때 김기진의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독립문 앞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동상의 주인공은 독립협회를 만든 서재필 박사이다. 서재필은 김옥균의 갑신정변에 가담하여 역적이 되었고 미국으로 망명하였으나 갑오개혁으로 사면되어 귀국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독립문 글씨와 대표 친일파 이완용이 매치가 잘 안되지만 이완용은 독립협회를 후원했다고 하고 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는 것을 독립으로 본다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 같다. 비슷한 이유로 일제시대에도 이 문은 철거되지 않고 살아 남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독립문 안쪽에는 독립관이라는 건물이 있다. 원래 조선 초기 (태종 7년)에 중국 사신을 영접하기 위한 건물로 지어진 모화관이었으나 구한말에 더이상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지 않아 방치되어 있었고 서재필이 독립관으로 개칭하고 이곳에서 애국토론회를 진행했다고 한다. 일제시대 때 철거가 되었으나 서대몬 독립공원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복원이 되었고 순국 선열들의 위패 봉안과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독립관이라는 글자는 원래 당시 황태자였던 순종 황제의 글씨였다고 하는데...

 

 

안에는 순국 선열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대통령과 광복회장이 보낸 화환이 있었다.

 

공원 뒤쪽에는 서대문 형무소가 있는데 가는 길에 유관순 열사의 동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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